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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빈 무덤과 천사의 소식 (1~8절)
28장 1절 말씀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8장 1절 해설
1) 시간: 안식일이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
안식일은 유대 달력으로 금요일 해 질 녘부터 토요일 해 질 녘까지이다. 예수님은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급히 장사되셨기 때문에, 여인들은 안식일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안식 후 첫날은 오늘의 일요일이다. "되려는"이라는 표현은 날이 막 밝아 오는 동틀 무렵을 뜻한다. 다른 복음서도 이른 시각이라는 점은 같다(막 16:2, 눅 24:1, 요 20:1). 복음서마다 "아직 어두울 때", "해 돋을 때"처럼 표현이 조금씩 다른데, 어둠이 걷히며 날이 밝아 오던 시간대를 각자 다르게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마가복음 16:2
그 이레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들이 무덤으로 가며
⊙ 누가복음 24:1
이레의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 요한복음 20: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보니 돌이 무덤에서 옮겨졌는지라
2) 사람: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는 갈릴리 출신으로 예수님을 따르며 섬기던 여인이다(눅 8:2). 다른 마리아는 27장 56절에 나오는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두 사람은 십자가 곁을 지켰고(27:55~56), 예수님이 장사되시는 것도 지켜보았다(27:61). 그래서 이들은 십자가, 매장, 빈 무덤을 모두 직접 본 증인이 된다. 또한 당시 사회에서 여성의 증언은 법적 효력이 낮게 취급되었는데도, 복음서는 부활의 첫 증인으로 여인들을 기록한다. 이는 이야기를 꾸며 낸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는 단서로 자주 언급된다.
3) 목적: 무덤을 보려고 갔다
마가와 누가는 여인들이 향품을 바르러 갔다고 기록하지만, 마태는 단순히 "무덤을 보려고" 갔다고 쓴다. 마태가 말하는 이 방문에는 부활을 기대하는 모습이 전혀 없다. 그들은 슬픔 가운데 주님이 누우신 곳이라도 보고 싶어 찾아간 것이다. 더구나 마태복음은 무덤 입구가 큰 돌로 막히고 봉인되었으며 경비병까지 세워졌다고 전한다(27:62~66). 여인들이 그 돌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인간적으로는 아무 소망이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되는 것이다.
4) 신학적 의미
안식 후 첫날은 창조의 첫날과 맞닿는 날이어서 부활을 새 창조의 시작으로 읽을 수 있다. 훗날 교회가 이날을 주일로 지키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또한 이 구절은 앞의 27장(죽음과 장사)과 뒤의 천사 현현(28:2~)을 잇는 전환점 역할을 한다.
28장 2절 말씀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28장 2절 해설
1) 큰 지진이 나며
마태복음에서 지진은 하나님의 중대한 개입을 알리는 표지로 쓰인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실 때에도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졌다(27:51). 죽음과 부활이라는 두 사건 모두 지진과 함께 기록되는 것은 마태복음만의 특징이다. 구약에서도 지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거나 역사에 개입하실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출 19:18, 시 114:7). 따라서 이 지진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2)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주의 천사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자이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 때에도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났다고 기록하는데(1:20, 2:13, 2:19), 부활 장면에서도 천사가 등장하면서 처음과 끝이 서로 호응하는 구조가 된다. "하늘로부터 내려와"라는 표현은 이 일이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서 비롯된 사건임을 분명히 한다. 부활은 제자들의 상상이나 조작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는 것이다.
3) 돌을 굴려 내고
무덤을 막은 돌은 큰 돌이었고(27:60), 인봉되고 경비병까지 세워져 있었다(27:62~66). 사람의 힘으로는 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 둘 점이 있다. 돌을 굴려 낸 목적은 예수님이 나오시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인들과 제자들이 빈 무덤을 직접 보고 확인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셨기 때문이다(28:6). 이는 빈 무덤이라는 증거를 열어 보이는 행위이다.
4) 그 위에 앉았는데
천사가 굴려 낸 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은 여유와 권위를 보여 준다. 사람들이 인봉하고 경비병을 세워 막으려 했던 일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힘이 없었음을 나타낸다. 로마의 인장과 군인들의 경비도, 돌의 크기도 하나님의 뜻을 막지 못했다는 것을 한 장면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28장 3절 말씀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28장 3절 해설
1) 그 형상이 번개 같고
형상은 천사의 겉모습, 곧 얼굴과 전체적인 모습을 가리킨다. 번개는 눈부신 광채와 순간적인 번쩍임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이 똑바로 쳐다보기 어려운 빛이라는 뜻이다. 성경에서 하늘의 존재나 하나님의 영광은 흔히 빛과 번개로 표현된다. 다니엘 10장 6절에서도 환상 중에 나타난 존재의 얼굴이 번개 같다고 묘사한다(단 10:6). 이 표현은 천사가 사람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사자임을 보여 준다.
⊙ 다니엘 10장 6절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개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 같더라
2)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흰 옷은 성경에서 거룩함, 순결, 하늘의 영광을 상징한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변모하셨을 때 옷이 빛처럼 희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는데(마 17:2), 28장 3절의 묘사는 이 장면과 닮아 있다. 또 다니엘서에서는 하나님의 모습이 옷은 눈같이 희고라고 표현된다(단 7:9). 눈은 티 없이 깨끗한 흰색의 대표적인 비유이므로, 천사의 옷이 이 세상의 어떤 흰색보다 밝았음을 나타낸다.
⊙ 마태복음 17: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 다니엘 7:9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눈같이 희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며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28장 4절 말씀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28장 4절 해설
1) 지키던 자들
지키던 자들은 27장 62~66절에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빌라도에게 요청하여 세운 무덤 경비병을 가리킨다. 빌라도는 "경비병을 데려가라, 너희 아는 대로 굳게 지키라"고 허락했고(27:65), 이들은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지켰다. 이 경비병은 로마 군인 혹은 성전 경비대로 보는 견해가 있으며, 어느 쪽이든 훈련받은 무장 병력이다. 사람이 세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어 수단이었던 셈이다.
2)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무서워하여는 단순한 놀람이 아니라 극도의 공포를 뜻한다. 여기서 떨며로 번역된 말은 2절의 지진과 같은 어근에서 나온 단어이다. 곧 땅이 흔들렸을 뿐 아니라 경비병들의 몸도 함께 흔들렸다는 의미가 된다. 땅의 진동과 사람의 떨림이 같은 단어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자연과 사람이 모두 흔들린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들이 두려워한 대상은 천사이며, 3절에서 묘사된 번개 같은 형상과 눈 같은 옷을 직접 마주한 반응이다.
3)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죽은 사람과 같이라는 표현은 경비병들이 기절하거나 몸이 굳어 꼼짝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강한 아이러니가 있다. 무덤을 지키던 자들이 죽은 사람처럼 되고, 정작 죽었던 예수님은 살아나셨다. 죽음을 가두려던 자들이 오히려 죽은 자처럼 쓰러진 것이다. 또한 인봉과 경비라는 인간의 계획이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아무 힘이 없었음을 보여 준다. 이 경비병들이 정신을 차린 뒤 대제사장들에게 보고하는 내용이 11절 이하로 이어진다.
28장 5절 말씀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28장 5절 해설
1)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4절에서 경비병들은 공포로 쓰러졌지만, 천사는 그들이 아니라 여자들에게 말을 건넨다. 부활의 첫 소식이 무장한 군인이나 종교 지도자가 아닌 슬픔 가운데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먼저 전달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앞서 1절에서 본 것처럼 이들은 십자가, 장사, 빈 무덤을 모두 지켜본 증인이었다. 천사의 말은 이 여인들이 부활의 소식을 처음 듣고 전하는 사람으로 세워지는 출발점이 된다.
2)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무서워하지 말라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날 때 반복되는 인사이다. 마리아에게(눅 1:30), 요셉에게(마 1:20), 목자들에게(눅 2:10) 천사가 나타났을 때에도 같은 말이 먼저 나왔다. 여기서 너희는이라는 표현은 강조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경비병들과 달리 너희는이라는 대조의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천사의 위엄은 같지만, 그것을 대하는 자에 따라 두려움으로 쓰러지는 자와 위로를 받는 자로 나뉜다. 또한 여인들이 느낀 두려움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의 경외였고, 천사는 그 두려움을 기쁨의 소식으로 바꾸어 주고 있다.
3)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천사는 여인들이 무엇 때문에 왔는지 이미 알고 있다. 여인들은 부활을 기대하지 않고 죽은 예수님의 무덤을 보러 왔지만(28:1), 천사는 그들의 마음과 목적을 알고 말을 건넨다. 이는 하나님이 슬퍼하며 찾는 자들의 마음을 아신다는 점을 보여 준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이라는 표현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이미 완료된 사건의 결과가 지금도 유효함을 나타내는 형태의 말이다. 천사는 부활을 선포하면서도 십자가를 지우지 않는다. 부활하신 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바로 그 예수이며, 십자가와 부활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구원 사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28장 6절 말씀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28장 6절 해설
1)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천사는 먼저 무덤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 여인들은 죽은 예수님의 시신이 있는 무덤을 보러 왔지만(28:1), 천사는 **"여기 계시지 않다"**고 말한다. 5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찾는다고 한 말에 대한 직접적인 답이다. 죽은 자를 찾던 이들에게 죽은 자의 자리에는 그분이 없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것이다. 이 말은 부활의 첫 번째 증거인 빈 무덤을 선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2)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이 구절의 중심이다. 살아나셨느니라는 하나님에 의해 일으켜지셨다는 뜻을 담은 표현으로, 부활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임을 나타낸다. 또한 완료된 사건의 결과가 지속됨을 나타내는 형태여서, 예수님이 살아나셨고 지금도 살아 계심을 선포하는 말이 된다.
말씀하시던 대로라는 표현도 중요하다. 예수님은 이미 여러 차례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사흘째 살아나실 것을 미리 말씀하셨다(마 16:21, 17:23, 20:19).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했지만, 부활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 12:40에서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부활은 예수님이 참된 말씀의 주인이심을 확증하는 사건이 된다.
⊙ 마태복음 12:40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으리라
3)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천사는 여인들에게 직접 와서 확인하라고 초대한다. 믿음을 일방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눈으로 확인할 증거를 보여 주는 것이다. 누우셨던이라는 과거형 표현은 시신이 놓였던 자리가 이제는 비어 있음을 가리킨다. 2절에서 돌을 굴려 낸 이유가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예수님이 나오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인들이 빈 무덤을 직접 보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확인은 뒤에 이어지는 전달의 사명(28:7)의 근거가 된다. 본 자만이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28장 7절 말씀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28장 7절 해설
1) 또 빨리 가서
6절의 **"와서 보라"**가 확인의 초대였다면, 7절은 **"가서 전하라"**는 파송이다. 여인들은 빈 무덤을 직접 본 뒤 곧바로 증인으로 보내진다. 빨리라는 표현은 이 소식이 지체할 수 없는 급한 소식임을 보여 준다. 슬픔에 잠겨 있을 제자들에게 이 소식은 하루라도 빨리 전해져야 했다. 당시 여성의 증언이 법적으로 낮게 취급되었음에도 부활의 첫 전달자로 여인들이 세워졌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2)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히실 때 모두 도망쳤던 사람들이다(26:56). 그런데 부활의 소식은 이들을 책망하는 말이 아니라 다시 부르는 말로 전해진다. 10절에서 예수님이 이들을 **"내 형제들"**이라 부르시는 것과도 이어진다. 실패한 제자들을 여전히 제자로 대하시는 은혜가 이 구절에 담겨 있다.
3)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전할 내용의 핵심은 부활이다. 6절에서는 **"살아나셨느니라"**라고 선포했는데, 여기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라는 표현이 덧붙는다. 이는 죽은 자들 사이에서 일으켜져 나오셨다는 뜻으로, 부활이 단순한 소생이 아니라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나오신 사건임을 강조한다. 이 표현은 훗날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에서도 자주 쓰인다.
4)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먼저 가시나니는 목자가 앞서 인도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에 이미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에 가리라"**고 말씀하셨다(26:32). 따라서 이 말은 새로운 약속이 아니라 이미 하신 말씀의 성취이며, 6절의 **"말씀하시던 대로"**와 같은 맥락이다.
갈릴리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처음 만나 부르심을 받은 곳이며,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된 곳이다(4:12~22). 또한 이방인과 접촉이 많아 **"이방의 갈릴리"**로 불린 지역이다(4:15). 그러므로 갈릴리로 다시 모이게 하신 것은 제자들을 처음 부르심의 자리로 회복시키시는 것이며, 16~20절의 모든 민족을 향한 대위임령을 준비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5)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천사는 말을 맺으며 이 메시지가 확실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보라는 주의를 환기하는 말이고, 내가 일렀느니라는 천사가 전한 이 말이 하늘의 권위로 보증된다는 뜻이다. 여인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추측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며, 이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진다.
28장 8절 말씀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28장 8절 해설
1)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여인들의 마음에는 서로 다른 두 감정이 함께 있었다. 무서움은 5절에서 천사가 "무서워하지 말라"고 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지진과 천사의 현현, 빈 무덤이라는 초월적 사건 앞에서 느끼는 경외와 떨림이다. 큰 기쁨은 죽었던 주님이 살아나셨다는 소식에서 오는 감격이다. 마태복음에서 **"큰 기쁨"**은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았을 때(2:10)에도 쓰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드러나는 순간의 반응이다. 하나님의 일하심 앞에서는 경외와 기쁨이 함께 나타난다는 점을 보여 준다. 4절의 경비병들은 두려움만 가졌고, 여인들은 두려움과 기쁨을 함께 가졌다는 점에서도 대조가 된다.
2) 빨리 무덤을 떠나
7절에서 천사가 **"빨리 가서"**라고 명한 말씀에 즉시 순종한 모습이다. 여인들은 무덤 앞에 머물러 감상에 잠기지 않고 곧바로 움직인다. 무덤은 죽은 자를 찾던 자리였지만, 이제는 떠나야 할 자리가 되었다. 부활의 소식을 들은 사람은 죽음의 자리에 머물 수 없고 소식을 전하러 나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3)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알리려고는 7절의 **"이르되"**를 이행하는 것이다. 여인들은 천사가 맡긴 사명을 그대로 수행하려는 마음으로 달려간다. 기쁜 소식은 혼자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전하는 것이며, 이는 20절의 대위임령으로 이어지는 흐름의 시작이기도 하다. 부활의 첫 증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첫 번째 전달자가 된 것이다.
4) 달음질할새
달음질은 천천히 걷는 것이 아니라 뛰어가는 모습이다. 두려움과 기쁨이 뒤섞인 마음이 몸의 움직임으로 드러난 것이다. 무덤에 올 때는 슬픔 가운데 무거운 걸음이었지만(28:1), 돌아갈 때는 기쁨으로 가벼운 달음질이 되었다. 같은 길이 부활의 소식을 듣고 나서는 전혀 다른 길이 된 것이다.
2. 부활하신 예수님과 여인들의 만남 (9~10절)
28장 9절 말씀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28장 9절 해설
1)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앞의 8절에서 여인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려가던 중이었다. 바로 그 길 위에서 예수님이 먼저 찾아오신다. 지금까지는 천사가 부활을 전했지만, 이제는 부활하신 주님이 직접 나타나신다. 이것은 마태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또한 여인들은 부활을 기대하지 않고 무덤을 찾았으나(28:1), 순종하며 나아가는 가운데 주님이 먼저 그들을 만나 주셨다. 소식을 전하러 가던 사람이 그 소식의 주인공을 직접 만나는 구조이다.
2) 평안하냐
원문의 인사말은 **"기뻐하라"**는 뜻을 가진 말로, 당시 일상적으로 쓰이던 가벼운 인사였다. 개역개정은 이를 **"평안하냐"**로 옮겼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평범하고 따뜻한 인사로 먼저 다가오신다. 십자가의 죽음을 지켜보며 슬픔과 두려움에 잠겨 있던 여인들에게, 이 인사는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었음을 알리는 말로 들렸을 것이다. 8절의 큰 기쁨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또한 천사는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예수님은 친근한 인사로 먼저 마음을 열어 주신다.
3)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발을 붙잡았다는 것은 여인들이 부활하신 몸을 실제로 만졌다는 뜻이다. 이는 부활이 환상이나 영혼만의 나타남이 아니라 몸을 가진 실제적 부활이었음을 보여 주는 단서가 된다. 누가복음 24장 39절에서도 예수님이 **"나를 만져 보라"**고 하시며 같은 점을 확인시켜 주신다. 또한 발을 붙잡는 행동은 당시 존경과 간청, 경의를 표하는 자세였다. 여인들은 다시는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발을 붙잡았을 것이다.
4) 경배하니
경배는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고백하는 반응으로 자주 나온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했고(2:11), 제자들도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의 아들이 참으로 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다(14:33). 이제 여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는 첫 사람들이 된다. 마태복음은 처음(2:11)과 끝(28:9, 17)에서 모두 경배를 기록하여, 예수님이 경배받으실 분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드러낸다. 또한 이 경배는 빈 무덤이라는 사실에서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으로 넘어가는 신앙의 전환을 보여 준다
28장 10절 말씀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28장 10절 해설
1)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여인들은 9절에서 발을 붙잡고 경배하며 경외 가운데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두려움을 아시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5절에서 천사가 했던 말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천사가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이 직접 하시는 말씀이다. 하늘의 사자가 전한 위로가 이제 주님의 입에서 확증되는 것이다.
2)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7절에서 천사가 맡긴 사명을 예수님이 다시 한번 직접 명하신다. 같은 메시지가 천사와 주님, 두 번 반복되어 그 확실성이 강조된다.
여기서 주목할 표현은 **"내 형제들"**이다. 7절에서 천사는 **"그의 제자들"**이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내 형제들"**이라 부르신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히실 때 모두 도망쳤고(26:56), 베드로는 세 번 부인했다(26:69~75). 그런데도 주님은 이들을 책망하거나 버리지 않고 "형제"라 부르신다. 이는 실패한 제자들을 용서하시고 관계를 회복시키시는 은혜를 보여 준다. 마태복음 12장 49~50절에서 **"누구든지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라고 하신 말씀과 연결해서 읽을 수도 있다. 또한 요한복음 20장 17절에서는 같은 맥락에서 **"내 형제들에게 가서 …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라고 말씀하신다.
⊙ 요한복음 20장 1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말하기를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셨다 하라
3) 거기서 나를 보리라
갈릴리에서 만나겠다는 약속은 7절의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와 같으며, 26장 32절에서 미리 하신 말씀의 성취이다. 7절에서는 "그를" 뵐 것이라 했고, 10절에서는 예수님이 직접 "나를" 보리라고 하신다. 천사의 전언이 주님의 직접적인 약속으로 바뀐 것이다. 갈릴리는 제자들이 처음 부르심을 받은 곳(4:18~22)이자 16~20절의 대위임령이 주어지는 장소이다.
4) 이 말씀의 의미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여인들을 다시 증인으로 세우신다. 천사의 말을 들은 뒤에도 주님이 직접 확인해 주심으로써, 여인들이 확신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전할 수 있게 하신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이 모이는 일을 직접 주관하시며, 부활 이후의 사역을 주님이 먼저 계획하고 이끄신다는 점을 보여 주신다.
3. 대제사장들의 거짓 소문 (11~15절)
28장 11절 말씀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28장 11절 해설
1) 여자들이 갈 때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하러 가는 바로 그 시간에 다른 쪽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태는 두 장면을 동시에 진행되는 것처럼 배치하여 대조를 만든다. 한쪽에서는 기쁨으로 부활을 전하러 가고, 다른 쪽에서는 부활을 덮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된다. 같은 사건을 두고 전하는 길과 감추는 길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2)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경비병 중 몇이라는 표현은 경비병 전원이 아니라 일부 대표가 보고하러 갔다는 뜻이다. 4절에서 이들은 죽은 사람처럼 되었으나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움직인다. 성은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이들은 빌라도가 아니라 대제사장들에게 먼저 보고하는데, 27장 62~66절에서 경비를 요청한 쪽이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었고 경비병이 이들의 지휘 아래 있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 점은 이들이 성전 경비대였다는 견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자주 언급된다. 다만 14절에서 총독에게 이 일이 들리더라도 해결해 주겠다고 한 것을 보면, 로마 군인이었다는 견해도 가능하여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린다.
3) 모든 된 일을
경비병들은 자신들이 직접 본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 지진, 천사의 강림, 돌이 굴러간 일, 무덤이 빈 것까지 **"모든 된 일"**에 포함된다.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부활의 첫 보고자는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아니라 적대하던 쪽의 경비병들이었다. 대제사장들은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자신들이 세운 경비병의 증언을 통해 이 사실을 들은 것이다. 즉 부활을 부정하려는 자들조차 빈 무덤이라는 사실 자체는 부인할 수 없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4)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27장 62~66절에서 대제사장들은 **"그가 살아나리라 하던 말을 우리가 기억하노니"**라며 무덤을 단속했다. 예수님이 사흘 만에 살아나시리라는 말씀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말씀대로 일이 벌어졌다는 보고를 들은 이들은 믿음으로 나아가지 않고 은폐를 선택한다. 같은 증거를 보고도 여인들은 경배와 순종으로, 대제사장들은 거짓과 돈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이 반응은 12~15절에서 구체적으로 이어진다.
28장 12절 말씀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28장 12절 해설
1)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그들은 11절에서 경비병의 보고를 받은 대제사장들이다. 이들은 혼자 결정하지 않고 장로들과 함께 모여 대책을 세운다. 대제사장, 장로, 서기관은 예수님을 죽이는 일을 주도한 산헤드린(공의회)의 구성원들이다(26:3, 27:1).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함께 모의했던 사람들이(26:3~4) 이제는 부활을 덮기 위해 다시 함께 모의한다. 의논한 내용은 부활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였다. 27장 1절에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의논한 것과 같은 단어가 쓰여, 이들의 행동 방식이 처음과 끝이 똑같다는 점을 보여 준다.
2) 군인들에게
마태는 11절의 경비병과 달리 여기서는 군인들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훈련받은 병사들이며, 대제사장들이 이들을 직접 상대하는 것으로 보아 성전 경비대 혹은 대제사장들의 영향력 아래 있던 병력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대제사장들에게는 입을 막아야 할 가장 중요한 대상이었다.
3) 돈을 많이 주며
돈을 많이 주며는 매수를 뜻한다. 여기에 강한 아이러니가 있다. 예수님을 넘겨줄 때도 대제사장들은 가룟 유다에게 은 삼십을 주었다(26:14~15, 27:3~10).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도, 부활을 덮는 일에도 돈이 사용된 것이다. 또한 마태복음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가르친다(6:24). 진리를 마주한 자리에서 이들은 진리를 따르지 않고 돈으로 진실을 사려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많이"**라는 표현은 사실을 덮는 데 큰 비용을 치러야 할 만큼 증거가 분명했다는 점을 암시한다. 거짓이라면 굳이 큰돈을 들여 입을 막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부활을 막으려는 시도 자체가 오히려 빈 무덤의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셈이 된다.
28장 13절 말씀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28장 13절 해설
1)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대제사장들은 군인들이 본 것을 그대로 말하게 하지 않고, 자신들이 만든 각본을 말하도록 지시한다. 11절에서 군인들은 **"모든 된 일"**을 사실대로 보고했지만, 이제는 그 사실을 정반대로 바꾸어 말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12절의 돈은 바로 이 거짓 증언의 대가였다. 여기서 **"너희는"**이라는 표현은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일을 군인들에게 떠넘기는 모양새이기도 하다. 자신들은 뒤에 숨고 군인들의 입을 통해 소문이 퍼지게 하려는 것이다.
2)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이 각본은 27장 62~64절에서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제기했던 우려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그들은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큰 문제가 될 것이라며 경비를 요청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들이 우려했던 바로 그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퍼뜨리는 것이다. 부활을 막으려고 세운 경비가 오히려 거짓 소문의 재료가 되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밤에라는 설정은 누구에게도 목격되지 않았다는 그럴듯한 구실을 만들어 준다.
3) 우리가 잘 때에
이 표현에는 치명적인 모순이 있다. 첫째, 경비병이 근무 중에 잠을 잤다면 그것은 로마 군법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죄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14절에서 대제사장들이 총독이 이 일을 듣더라도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둘째, 자고 있었다면 누가 가져갔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생긴다. 잠든 사람이 도둑이 제자들이었다고 증언할 수는 없다. 이 거짓말은 스스로를 반박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4)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도둑질하여라는 표현은 부활을 시신 도난 사건으로 바꾸려는 시도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오히려 빈 무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무덤에 시신이 있었다면 도난 이야기가 필요 없었을 것이다. 또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히실 때 모두 도망친 사람들이었고(26:56), 이후에도 두려워 숨어 있었다. 그런 이들이 무장한 경비병과 봉인된 큰 돌을 뚫고 시신을 훔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제자들은 훗날 부활을 전하다가 목숨을 잃기까지 했는데, 거짓임을 알면서 그렇게 할 이유는 없다.
28장 14절 말씀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28장 14절 해설
1)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총독은 로마 총독 빌라도를 가리킨다. 무덤 경비를 허락한 사람도 빌라도였다(27:65). 앞서 13절에서 본 것처럼 경비병이 근무 중에 잠을 잤다는 말은 군율을 어긴 중대한 과실이 될 수 있었다. 로마 군대에서 경비 임무를 소홀히 한 병사에게는 엄한 처벌이 따랐다고 알려져 있다. 이 점은 군인들이 거짓 증언을 받아들이기 전에 가장 걱정했을 문제이기도 하다. 대제사장들은 이 걱정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2) 우리가 권하여
권하여는 설득하여, 달래어라는 뜻이다. 대제사장들은 빌라도를 설득하여 무마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이 말에는 이들이 로마 총독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자신했음이 드러난다. 예수님을 재판할 때에도 대제사장들은 군중을 선동하여 빌라도가 뜻을 굽히게 만들었다(27:20~24). 이번에도 돈과 정치적 영향력으로 일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약속이며, 실제로 그렇게 될지는 보장할 수 없는 말이었다.
3)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근심하지 않게는 염려할 것 없이 안전하게 해 주겠다는 뜻이다. 12절의 돈이 보상이었다면, 14절의 보호 약속은 안전 보장이다. 대제사장들은 돈과 안전이라는 두 가지를 내걸어 군인들을 거짓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군인들은 하나님이 일으키신 부활의 증인이 되었는데, 사람이 주는 돈과 안전 약속 때문에 진실을 말할 기회를 포기한다. 또한 대제사장들은 군인들의 근심은 덜어 주겠다고 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마음에 있는 두려움은 감추려 하고 있다. 사실을 덮는 데 이처럼 많은 수고가 필요했다는 점이 진실의 무게를 오히려 드러낸다.
28장 15절 말씀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28장 15절 해설
1) 군인들이 돈을 받고
12절에서 대제사장들이 돈을 많이 주며 시작한 매수가 여기서 성사된다. 군인들은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천사의 강림과 돌이 굴러가는 장면, 빈 무덤을 모두 보았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는 길 대신 돈을 받는 길을 택했다. 마태복음은 처음부터 재물이 사람의 마음을 붙잡는 힘을 경고해 왔는데(6:19~24), 이 장면에서 그 경고가 현실이 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룟 유다가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았던 것처럼, 여기서도 돈이 진실을 사고파는 도구가 되었다.
2)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가르친 대로는 13절에서 대제사장들이 **"너희는 말하기를"**이라며 지시한 각본을 가리킨다. 군인들은 본 것이 아니라 들은 대로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는 참된 증인과 거짓 증인의 차이를 보여 준다. 여인들은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전하려고 달려갔지만(28:8), 군인들은 지시받은 내용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마태는 이 대조를 통해 부활의 증언은 사실에 기초한 것이며, 반대편의 주장은 돈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임을 드러낸다.
3)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오늘날까지라는 표현은 마태가 이 복음서를 기록하던 시점에도 이 소문이 여전히 퍼져 있었음을 알려 준다. 이는 마태복음이 쓰인 초대교회 시대의 논쟁 상황을 보여 주는 단서이다. 교회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전할 때, 반대편에서는 **"제자들이 시체를 훔쳤다"**고 맞섰던 것이다. 마태가 11~15절을 기록한 이유 중 하나는 이 소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도 의미 있는 점이 있다. 이 소문은 빈 무덤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무덤에 시신이 남아 있었다면 시신을 보여 주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반대자들은 시신을 제시하지 못하고, 도둑질했다는 해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부활을 부정하는 쪽도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한 셈이다.
4. 갈릴리 산 위의 대위임령 (16~20절)
28장 16절 말씀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28장 16절 해설
1) 열한 제자가
열한 제자라는 표현에는 가룟 유다의 빈자리가 담겨 있다. 유다는 예수님을 판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27:3~5). 열둘이었던 제자 공동체가 열하나로 줄어든 채 부활하신 주님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이 잡히실 때 모두 도망쳤고(26:56), 베드로는 세 번 부인했다(26:69~75). 그러나 주님은 이들을 내 형제들이라 부르시며(28:10) 다시 모으셨다. 실패한 사람들이 여전히 주님의 부르심 안에 있다는 점이 이 표현 속에 담겨 있다. 또한 마태복음은 열한 제자만 언급하고 다른 사람은 언급하지 않아, 이 장면의 초점이 제자 공동체에 맡겨지는 사명에 있음을 보여 준다.
2) 갈릴리에 가서
제자들은 7절과 10절에서 전해진 말씀에 순종하여 갈릴리로 갔다. 여인들이 전한 소식을 믿고 움직인 것이다. 여인들이 천사와 주님의 말씀을 전했고, 제자들이 그 말씀을 듣고 따랐다는 점에서 증언과 순종의 연결이 이루어진다. 또한 갈릴리는 제자들이 처음 부르심을 받은 곳(4:18~22)이며,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된 곳(4:12~17)이다. 이방인과 접촉이 많아 **"이방의 갈릴리"**로 불린 지역이기도 하다(4:15). 처음 부르심을 받은 자리로 돌아가 새로운 사명을 받게 되는 구조이며, 26장 32절에서 미리 하신 약속의 성취이기도 하다.
⊙ 마태복음 26장 32절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하신대
3)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지시하신 산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장소를 미리 정해 두셨음을 보여 준다. 다만 앞의 7절과 10절에는 산에 대한 언급이 없으므로, 예수님이 별도로 알려 주셨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 산이 어느 산인지는 본문에 밝혀져 있지 않다. 마태복음에서 산은 하나님의 계시와 가르침이 주어지는 중요한 장소로 자주 등장한다. 산상수훈이 선포된 산(5:1), 기도하신 산(14:23), 변화산(17:1) 등이 그 예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가르침인 대위임령도 산 위에서 주어진다는 점은, 이 장면이 예수님의 가르침의 절정임을 보여 주는 장치로 볼 수 있다. 특히 산상수훈의 산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가르침이 마지막 산에서 모든 민족에게 가르치라는 명령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구조적인 대응을 읽을 수 있다.
4) 순종하는 제자들의 모습
이 구절에서 제자들은 말없이 순종하는 사람들로 나타난다. 대화나 변명, 설명은 기록되지 않고 **"가서 … 이르러"**라는 두 동사만 있다.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남아 있었을 텐데도 약속의 장소로 나아간 것이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위해 지정된 자리로 나아가는 것은 믿음의 기본적인 반응이다. 또한 이 구절은 다음 절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
28장 17절 말씀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28장 17절 해설
1) 예수를 뵈옵고
제자들은 16절에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렀고, 마침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다. 여인들이 전한 소식(28:7, 10)이 약속대로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마태는 이 만남의 구체적인 장면, 곧 예수님이 어떻게 나타나셨는지는 자세히 묘사하지 않고 제자들의 반응에 초점을 맞춘다. 부활의 주님은 약속하신 장소에서 약속하신 대로 기다리고 계셨다.
2) 경배하나
경배는 9절에서 여인들이 한 행동과 같은 표현이다. 마태복음에서 경배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고백하는 반응으로 쓰여 왔다(2:11, 14:33). 제자들 역시 부활하신 주님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께 드리는 경배로 반응한다. 마태복음은 시작(2:11)과 끝(28:9, 17)에서 모두 경배를 기록하여, 예수님이 경배받으실 분임을 일관되게 보여 준다. 열한 제자는 도망치고 부인했던 사람들이었으나, 이제는 주님 앞에 엎드리는 자리로 돌아왔다.
3)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이 구절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이다. 의심하는으로 번역된 말은 망설이다, 두 갈래 마음이 되다라는 뜻을 가진다. 마태복음 14장 31절에서 물 위를 걷다가 빠져 가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의심하였느냐"**고 하신 것과 같은 계열의 단어이다. 따라서 이 의심은 예수님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불신이라기보다, 믿음 가운데서 흔들리고 망설이는 상태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의심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뉜다. 열한 제자 중 일부라는 견해가 있고, 이 자리에 열한 제자 외에 다른 사람들도 함께 있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고전 15:6에서 500여 형제에게 나타나신 일과 연결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의심하는 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 고린도 전서 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여기에 복음서의 솔직함이 있다. 부활을 전하는 기록이 제자들의 의심까지 숨기지 않고 담고 있다는 것은, 이 이야기가 꾸며 낸 것이 아니라는 단서로 자주 언급된다. 또한 제자들이 부활을 쉽게 믿은 사람들이 아니었음을 보여 주므로, 이들이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실제로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28장 18절 말씀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28장 18절 해설
1) 예수께서 나아와
17절에서 제자들은 경배와 의심이 섞인 채 서 있었다. 예수님은 멀리서 말씀하지 않고 먼저 그들에게 다가오신다. 의심하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면서도 거리를 두지 않고 가까이 오시는 모습이다. 이는 여인들에게 먼저 찾아오셨던 9절과도 이어진다. 부활하신 주님은 언제나 먼저 다가오시는 분이다. 의심이 해결되어야 주님이 오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셔서 말씀하심으로 의심이 다루어진다.
2)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 장면에서 예수님이 말씀으로 사명을 맡기신다는 점이 중요하다. 마태복음은 산상수훈(5:1~2)에서 예수님이 입을 열어 가르치신 장면으로 시작하여 마지막 장면에서도 말씀으로 제자들을 보내신다.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설명이나 논증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었다. 또한 이어지는 19~20절의 명령이 예수님 자신의 직접적인 말씀이라는 점에서 그 권위가 분명해진다.
3)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이 선포가 이 구절의 중심이다.
① 모든 권세
권세는 권위와 통치권을 뜻한다. 예수님은 사역 중에도 권세 있는 자처럼 가르치셨고(7:29), 죄를 사하는 권세(9:6)와 만물에 대한 권세를 보여 주셨다. 그러나 여기서는 "모든" 권세라고 선언하신다. 제한된 영역이 아니라 전 영역에 대한 권위이다.
② 하늘과 땅
하늘과 땅은 우주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하늘의 영적 영역과 땅의 인간 역사 모두가 예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뜻이다. 이 장면은 4장 8~9절에서 사탄이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며 시험했을 때와 대조된다. 예수님은 그때 사탄에게 절하는 지름길을 거부하셨고, 이제는 십자가의 길을 지나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권세를 받으셨다. 사탄이 거짓으로 약속한 것을 아버지께서 참으로 주신 것이다.
③ 내게 주셨으니
주셨으니는 하나님이 주셨다는 뜻을 담은 표현으로, 이 권세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임을 나타낸다. 11장 27절에서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라고 하신 말씀과 이어진다. 또한 이 말은 완료된 사건을 나타내므로, 부활을 통해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다. 다니엘 7장 13~14절에서 인자 같은 이가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는 환상이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읽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진다.
⊙ 마태복음 11장 27절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이 소개하여 알게 하려 하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 다니엘 7장 13~14절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계신 이에게 이르러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겨가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28장 19절 말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8장 19절 해설
1) 그러므로
그러므로는 18절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선포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연결어이다. 제자들이 가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열심이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이 모든 권세를 가지셨기 때문이다. 권세가 먼저 선포되고 그 위에 명령이 세워지는 구조이므로, 대위임령은 주님의 권세에 근거한 사명임이 분명해진다. 의심이 남아 있던 제자들에게도 이 말씀은 든든한 기초가 된다.
2) 너희는 가서
너희는은 열한 제자를 직접 가리키지만, 이 명령은 이들을 통해 교회 전체에 주어진 사명으로 이해된다. 가서는 여인들에게 주어진 "가서 전하라"(28:7, 10)와 같은 흐름에 있다. 이제는 오기를 기다리는 방식이 아니라 나아가는 방식으로 복음이 전해진다. 구약에서는 이방인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드는 모습이 강조되었다면, 여기서는 제자들이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방향이 제시된다. 또한 원문에서 이 구절의 중심 동사는 **"제자로 삼으라"**이며, 가서, 세례를 베풀고, 가르치며는 이 명령을 설명하는 동작들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곧 사명의 핵심은 단순한 전도가 아니라 제자를 만드는 것이다.
3)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① 모든 민족
모든 민족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나라와 백성을 뜻한다. 마태복음은 처음부터 이방인에게 열린 복음을 암시해 왔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이방 여인들이 포함되어 있고(1:3~6),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했으며(2:1~12), 이방의 갈릴리에서 사역이 시작되었다(4:15). 10장 5~6절에서는 제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보내졌으나, 부활 이후에는 범위가 전 세계로 확장된다. 이는 다니엘 7장 14절에서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인자를 섬기게 된다는 환상의 성취와 이어진다.
⊙ 다니엘 7장 14절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겨가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② 제자로 삼아
제자는 배우는 자, 따르는 자를 뜻한다. 제자 삼는 일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수님을 주로 따르며 삶 전체를 그분께 맞추는 사람을 세우는 것이다. 제자들 자신이 의심과 연약함을 안고 있으면서도 부름 받았듯이, 그들이 세울 제자들 역시 주님께 배우며 자라 가는 사람들이다.
4)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① 세례
세례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로 한 사람이 공동체에 들어오는 공적인 표지이다. 물에 잠기는 행위는 옛 삶에서 새 삶으로 옮겨지는 것을 나타낸다. 제자 삼는 일이 내적인 따름이라면 세례는 그 따름의 외적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② 이름으로
이름은 단수형으로 쓰였다. 아버지, 아들, 성령을 세 개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이름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한 분이시면서 세 위격으로 계심을 드러내는 구절로 널리 받아들여진다. 또한 **"~의 이름으로"**는 그 분에게 속하고 그분의 소유가 됨을 뜻한다. 세례를 받는 사람은 삼위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는 것이다.
③ 삼위 하나님
이 구절은 아버지, 아들, 성령이 함께 언급되는 대표적인 본문이다. 3장 16~17절의 예수님의 세례 장면에서도 성령이 임하시고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가운데 삼위가 함께 나타난다. 이 점에서 28장 19절은 예수님의 세례에서 보인 하나님의 임재가 제자들의 사역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아들이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 나란히 놓이는 것은 예수님의 신적 위치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28장 20절 말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28장 20절 해설
1)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분부한 모든 것은 예수님이 지상 사역 동안 가르치신 모든 말씀을 가리킨다. 마태복음에는 산상수훈(5~7장), 선교 강화(10장), 천국 비유(13장), 공동체 강화(18장), 종말 강화(24~25장) 등 다섯 개의 큰 가르침 묶음이 있어, 이 구절을 이 모든 가르침을 아우르는 말씀으로 읽는 견해가 있다. 여기서 **"모든"**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듣기 좋은 부분만 골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가르침 전체가 대상이다. 또한 18절의 "모든 권세", 19절의 **"모든 민족"**에 이어 "모든 것", **"항상"**이 반복되어, 이 단락 전체가 '모든'이라는 말로 엮여 있음을 볼 수 있다.
2) 가르쳐 지키게 하라
19절에서 말씀드린 대로 중심 명령은 제자로 삼으라이며,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그 제자 삼는 일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주목할 점은 목표가 알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키게"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결론에서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를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에 비유하셨다(7:24~27). 제자도는 지식이 아니라 순종으로 드러난다. 또한 제자들이 가르칠 내용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예수님이 분부하신 것이므로, 교회의 가르침은 주님의 말씀에 붙들려 있어야 한다는 기준도 여기서 얻을 수 있다.
3) 볼지어다
볼지어다는 마태복음에서 중요한 선언 앞에 쓰이는 주의 환기의 표현이다. 28장 7절에서 천사가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고 한 것과 같은 계열의 말이다. 마지막 약속이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확실한 선언임을 강조한다.
4)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① 내가 … 함께 있으리라
이 약속은 마태복음의 처음과 호응한다. 1장 23절에서 예수님은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로 소개되었다. 복음서는 함께 계신 하나님으로 시작하여 함께 계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으로 끝난다. 18장 20절의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내가 그들 중에 있느니라"**는 말씀과도 이어진다. 또한 이 약속은 **'내가'**로 시작하여, 사명의 성패가 제자들의 능력이 아니라 함께하시는 주님께 달려 있음을 보여 준다.
② 항상
항상은 직역하면 **'모든 날 동안'**이라는 뜻이다. 좋은 날뿐 아니라 박해와 실패와 의심의 날들까지 모두 포함한다. 의심하던 제자들, 연약한 제자들에게 이 약속이 주어졌다는 점이 위로가 된다.
③ 세상 끝날까지
세상 끝날은 이 시대가 마치는 때, 곧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를 뜻한다. 이 약속은 열한 제자 개인에게만 해당되지 않고, 이들을 통해 이어지는 모든 세대의 교회에게 주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예수님은 승천하여 눈에 보이지 않게 되시지만, 성령을 통해 교회와 함께 계신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명이 끝날까지 계속되는 만큼 임재의 약속도 끝날까지 계속된다.
5) 마태복음 전체의 결론으로서의 의미
이 구절은 마태복음의 마지막 문장이다. 마태는 예수님의 승천 장면을 기록하지 않고 주님의 임재 약속으로 책을 마친다. 그래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명 가운데 계속되는 것처럼 읽힌다. 또한 28장 전체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2~4절에서 사람의 계획이 하나님 앞에서 무력했듯이, 이제 주님의 권세(18절) 아래 보냄 받은 자들은 **주님의 임재(20절)**로 힘을 얻는다. 은폐의 이야기(11~15절)가 돈과 거짓으로 이어졌다면, 마지막 장면은 권세와 임재로 마무리된다.
마태복음 28장 마무리
마태복음 28장은 빈 무덤에서 시작하여 온 세상으로 향하는 길로 끝난다. 20절의 말씀을 따라 장면이 바뀔 때마다 부활의 의미가 한 걸음씩 넓어지는 구조이다.
1) 부활은 하나님이 행하신 사건이다 (1~8절)
지진과 천사, 굴러간 돌 앞에서 인봉과 경비병은 아무 힘이 없었다. 부활은 사람의 계획이나 상상이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이 이루신 일이다. 기대 없이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은 두려움과 큰 기쁨으로 달려가는 첫 증인이 되었다.
2) 부활의 주님은 먼저 찾아오신다 (9~10절)
순종하며 달려가던 길 위에서 예수님이 직접 여인들을 만나 주셨다. 도망쳤던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 부르시며 관계를 회복시키시는 은혜가 드러난다.
3) 진실은 돈으로 덮을 수 없다 (11~15절)
대제사장들은 돈과 거짓으로 부활을 감추려 했다. 그러나 도둑질했다는 소문조차 빈 무덤을 전제하고 있다. 같은 사건 앞에서 경배와 증언의 길과 매수와 은폐의 길이 갈라진다.
4) 부활의 주님은 권세로 보내시고 임재로 함께하신다 (16~20절)
의심이 남은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은 다가와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하시고,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신다. 대위임령은 권세 → 사명 → 임재로 이어진다.
묵상과 적용
마태복음은 "임마누엘"(1:23)로 시작하여 "내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20)로 끝난다. 처음과 끝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맞물려 있는 것이다. 우리 역시 여인들처럼 두려움과 기쁨이 섞인 마음으로, 제자들처럼 경배와 의심이 함께 있는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선다. 그럼에도 주님은 우리를 내치지 않으시고 먼저 다가와 보내신다. 부활의 소식은 듣고 머무는 데 그치지 않고, 가서 전하고 가르쳐 지키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약속을 붙들고 오늘 하루도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 28장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초대이다.
